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왕의 난 (문단 편집) ==== 후기 ==== 혜제를 끼고 낙양의 장방에게로 달아났던 성도왕 사마영은 완전히 권력을 빼앗기고, 혜제와 함께 다시 장안으로 옮겨갔다. 그 이후 동해왕 사마월이 거병하여 하간왕 사마옹을 공격하자 사마옹이 사마영을 다시 하북으로 보내 사마월을 견제하려고 했다.[* 당시 하북에서 성도왕 사마영의 부하였던 공사번이 거병하여 동해왕 사마월의 세력과 싸우는 중이었다. 공사번 밑에서 훗날 후조의 시조가 되는 석륵도 활약하였다.] 사마영은 훗날 사마옹이 패망한 후 사마효에게 체포되었고, 유여[* 유곤의 형]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하간왕 사마옹과 동해왕 사마월의 싸움은 그야말로 개싸움이었는데, 이 둘의 싸움에 각지의 주자사, 군태수들과 온갖 사마씨 종친 왕들이 다 끼어들어서 완전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뛰어든 주요 인물만 해도 구희, 유여, 유곤 형제, 유홍, 유교, 사마효, 사마무 등 엄청나게 많다. 결국 하간왕 사마옹 편이었던 유교가 동해왕 사마월의 편이었던 유여, 유곤 형제한테 패배한 이후에 대세가 사마월 쪽으로 기울었다. 그 이후 사마월이 화해를 제시하는 것에 낚여 사마옹은 자신의 오른팔인 장방을 죽여버렸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사마옹이 패망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사마월은 사마옹을 향해 쳐들어가 장안을 함락시키고, 혜제를 다시 낙양으로 데려왔으며, 사마옹에게 낙양에 돌아오면 용서해준다고 했으나, 이는 거짓이었다. 하지만 지칠대로 지쳐 여기에 낚인 사마옹이 낙양에 가다가 결국 중간에서 [[사마모]]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 동안 [[혜제(서진)|혜제]]가 붕어하고 사마월이 예장왕 사마치를 제위에 올려 그가 회제가 되었다. 그러나 권력은 동해왕 사마월에게 있었으며, 이렇게 6년에 걸친 피비린내나는 내전은 일단락되었다. 여기까지가 팔왕의 난이다. 여기서 진정되었더라면 그나마 하내 사마씨 황실의 내분으로 수습될 뻔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